부처님 일생

32. 빔비사라왕의 귀의

몽하나 2021. 8. 28.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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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일생 서른두 번째 이야기 32. 빔비사라 왕의 귀의 편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법륜스님의 이야기로 들어보겠습니다.
지난 시간 이야기 31. 불의 설법편을 읽고싶으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눌러 잠시 읽고 가셔도 좋습니다.
2021.06.23 - [부처님 일생] - 31.불의설법

31.불의설법

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 부처님 일생 우르 벨라 가섭의 교화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하신 분께서는 잠시 읽고 오셔도 좋습니다. 2021.05.17 - [부처님 일생] - 30. 우르 벨라 가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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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 근교(보드가야)에서 부처님께서는 1000명의 출가사문 대중을 이끄시고 이곳 왕사성으로 오셨습니다.
가야 근교(보드가야)에서부터 이곳 왕사성까지는 80km나되는 거리입니다.
아마도 5~6일 정도 걸렸을 것으로 예측됩니다.
왕사성의 서문밖에 1000명의 출가사문 대중과 머물고 있을 때 하루 정도 거리에 위치하였을 때
빔비사라 왕은 가족과 대신들을 이끌고 그곳까지 마중 나왔습니다.
인도 당시 풍습은 수행자를 존중하는 문화였기 때문에 훌륭한 수행자가 집이나 나라를 방문할 때는
반드시 나가서 영접을 하는 풍습이었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아직 부처님을 모를때 였기 때문에 부처님을 마중나간것이 아니라 우르벨라가섭을
영접하러 나갔던 것입니다.
빔비사라왕은 우르벨라가섭을 세 바퀴 돌고 예의를 표하면서 한 뒤 이렇게 물었습니다.
제가 듣기로 우르 벨라 가섭파님께서 어떤 젊은 수행자에게 제자가 되었다는데 그것이 사실입니까?
소문이 말보다 빨랐던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믿어지지 않습니다.
"3살 먹은 어느 아이가 80 먹은 노인 보고 이것은 내 손자요 이 말이 더 믿기가 쉬울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우르벨라가섭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부처님을 세 바퀴 돌고 금강경 표현으로 하자면
편단 우경 우슬착지 합장 공경하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편단 우경 우슬착지 합장
“이때 수보리 장로가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꿇은 채 합장하며 부처님께 아뢰었다.” <금강경> 제2장 선현기청분(善現起請分)의 초입이다. 수보리의 이러한 행위가 있고 나서 부처님은 불교 교리의 정수인 공(空)에 관한 설명을 시작한다. 여기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것’, ‘오른쪽 무릎을 꿇는 것’ 그리고 합장이 품은 의미는 동일하다. 상대방에게 공경을 표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상대방에게 공경을 표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한자 원문으로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는 것은 편단 우견(偏袒右肩), 오른쪽 무릎을 꿇는 것은 우슬착지(右膝着地)라 합니다.
아울러 부처님을 상징하는 탑에 경의를 나타낼 때에도 으레 3번 탑돌이를 하는데 반드시 오른쪽으로 돌아야 합니다.
이름 하여 우요삼잡(右繞三匝).
이처럼 불교에서는 항시 오른쪽이 더 먼저이며 더 우월하고 신성한 것입니다.
단적으로 부처님의 생애부터 오른쪽 일색입니다. 마야부인의 오른쪽 옆구리에서 태어남을 이름. -불교신문-
합장}  

이분은 저의 스승이시고 저는 이분의 제자입니다.
제가 이분을 만나기 전에는 윤회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분을 뵙고 법을 깨치고 나서는 윤회의 씨앗을 버렸습니다.
이렇게 신앙고백을 하였습니다.
윤회의 씨앗을 심었다는 것은 천상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그런 제사를 지냈다는 것입니다.
윤회의 씨앗을 버렸다는 것은 해탈과 열반으로 나아가는 윤회 고를 벗어나는 즉 해탈로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이분은 참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세속적으로 말씀드리자면 그 당시 부처님의 초기 제자분들은 대부분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은데도 자신의 스승에 대한 예의 태도가 정말 깍듯했습니다.
이것은 즉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태도였습니다.
그 이유는 스승으로부터 법을 듣고 자신의 인생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때야 왕이 부처님을 향해서 예를 취하고 부처님을 향해서 법을 청했고
빔비사라 왕 또한 기뻐하며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부처님 제가 왕자였을 때 간절한 소원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제가 왕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둘째는 내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하는 것이고
셋째는 내가 부처님을 친견하는 것이고
넷째는 그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내가 그 미묘한 법을 이해하는 것이고
다섯 번째는 제가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기적 같은 일어났습니다.
저는 왕이 되었고 내 나라에 부처님이 출현하셨고 내가 부처님을 친견하였고
그 법문을 듣고 제가 깨우쳤습니다.
이제 제 마지막 남은 소원이 있는데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싶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이시여 부디 왕궁으로 드소서..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승낙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왕궁에 들지 않으셨기 때문에
빔비사라 왕은 성문 밖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은 곳에
왕이 아끼던 대나무 숲(벨루 바나)이 있었는데 그 숲을 부처님과 수행자들이 머무를 수 있는 처소로 공양을 하였습니다.

이곳이 바로 죽림정사 불교 최초의 절입니다.
부처님께서 이곳에 머무르실 때 사리풋트라, 목건연, 마 가섭 존자, 등 많은 제자들이 출가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곳에서만 계셨던 것이 아니고 왕사서 밖 영축산 (그리드라 풋타)에 많이 머물르셨습니다.
왕은 자기 인생이 괴로울 때면 부처님을 청해서 부처님을 통해 기쁨을 얻었습니다.
왕은 부처님께서 궁에 들지 않으셨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괴롭고 힘들 때면 부처님을 직접 찾아가야 했습니다.
영축산으로 오른 길 ...
소위 말하자면 붓다의 길로 불려져야 하지만
그 길은 지금도 빔비사라 왕의 길이라고 불립니다.
그 이유는 빔비사라 왕이 부처님을 뵈러 영축산을 올랐기 때문에 신하들은 왕이 다니기 쉽도록 길을 닦았습니다.
왕은 마차를 타고 그 산 아래로 와서 그거서 내려서는 가마를 타고 올라가서 그리고 난 뒤 가마에서 내려 신하들은 다 두고 혼자 올라가서 부처님과 상담을 하고 내려왔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왕이 천하에 제일 높은 사람인데 그것을 누가 듣는 것은 창피한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왕이라도 어쩔 수 없이 홀로 부처님을 찾아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우리가 갖고 있는 행복이라는 가치관이 단지 사회적 지위와 인기와 건강과 자식 재물과 명예를 구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고 빌고 얼마나 바라는지 에대하여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당시 왕은 이 세상에서 가장 높은 지위에 있었고
요즘식으로 말씀드리자면 가장 좋은 차를 타고 가장 좋은 보석 집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 원하는 것은 모두 가질 수 있었습니다. 또한 많은 병사가 그를 보호했고 천하의 미인을 다 불러 모아 궁전에 살게 했고 자식 또한 많았고 강력한 나라다 보니 군사력을 갖추어 주변 이웃 나라를 정복하였던 부족함이 없던 절대 군주였는데도 번뇌가 많고 괴로움이 많고 인생이 괴로웠던 것입니다.

그해 비해 부처님께서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집도 없고, 신발도 없습니다.
옷도 다 떨어어진 옷 한 벌이며 밥도 남에게 얻어먹습니다.
출가하였으니 자식도 없고 가족도 없었습니다.
호위병도 없고, 아무것도 갖지 않은 부처님은 마음이 편안하고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세상 사람들 힘들고 괴로운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습니다.

하지만 왕은 세상의 제일 좋은 것을 많이 갖고 있었으면서도 늘 괴로웠습니다.

세상의 좋은 말, 예쁜 여자, 좋은 땅, 좋은 보석이나 옷은 등등 이런 좋은 것이 있다면 자신의 손에 넣었습니다. 때로는 빼앗았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스스로 행복하지 않고 남에게 고통을 주었을까요....
그는 항상 고뇌와 번뇌로 마음이 항상 바빴습니다.
나라가 크니 국경을 맞댄 나라가 많아 국경 주위에는 반란과 전쟁이 끊임이 없었습니다.
또한 부인이 많고 아들들이 많으니 형제끼리 서로 경쟁을 하여 서로 죽이고 하니 부모로서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여인이 많다 보니 서로 시기 질투하고 비난하는 얘기만 들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는 아무리 진수성찬이 있어도 늘 독이 있는지 검사해야 했고
호위병이 많지만 늘 암살의 두려움과 위험 속에 살아야 했습니다.
그러니 왕은 부처를 친견하고 상담을 하면
마치 고통 속의 악몽을 꾼 사람이 깨어나듯이 편안해지고 기뻐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왕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라고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왕이 부처님께 무엇을 많이 해 드렸구나 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아무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기 때문에 왕이라고 해도 특별히 부처님께
아무것도 해드릴 것이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한 번도 빔비 사람 왕에게 무엇을 달라고 말씀하신 적도 없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미묘한 불법을 듣고 깨쳐서 시험 합격, 좋은 직장, 좋은 차, 돈이 아닌 걸림 없는 자유 두려움 없는 행복을 얻어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기복적으로 바라는 것은 부처님의 이름을 빌어서 나 왕 되게 해 주세요.
라는 의미와 같습니다.

이는 붓다가 깨치고 붓다께서 가르치는 그 어떤 법도 우리는 모르는 것입니다.

아함경에 이르면 빔비사라 왕과 부처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성도 하시기 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기록되어있습니다.
어느 날 빔비사라 왕은 탁발하시는 부처님을보고
신하를 시켜 뒤를밟게 한 뒤 라자가하를 둘러싼 다섯개의 산중 판다라 라는 산 동굴로 직접 찾아가
부처님을 만난적이있습니다.
그때 부처님의 자태가 너무나 거룩해 보였기 때문에 빔비사라 왕은 어느족 출신이냐고 물어본적이 있었습니다.
사실 빔비사라 왕은 샤카족 출신 왕족이 출가했다는 소식을 이미 들었습니다.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용모와 행동 품어져나오는 기품이 너무나 남다르고 탐이났습니다.
하여 자신의 여동생과 결혼하여 세상을 함께 통치할 것을 제한하였습니다.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거절하셨습니다.
그러자 자신의 왕위 자리는 어떠나고 물었습니다.
이 또한 거절하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자기 입안에 있는 가래를 더럽다고 뱉은 사람이 더 큰 가래를 보고 집어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기거 가래는 세속적인 것입니다.
해탈을 위해 왕위도 버리신 부처님이신데 남의 왕위를 탐낼리 없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듣고 이분은 위없는 깨달음을 얻겠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빔비사라 왕은 당신이 만약 위없는 깨달음을 얻는다면 나에게 꼭 그 위없는 깨달음의 법을 설해주시오.
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빔비사라 왕에게 약속하셨고,
훗날 성도 하신 후 부처님께서는 빔비사라 왕에게 법을 설파하셨습니다.
빔비사라 왕은 죽을 때까지도 부처님의 신실한 제가 신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그에 따라 마음의 평화를 얻었습니다.

그러니 불자님들도 스님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머리를 깎고 스님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법에 귀의해서 열반과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불자의 길입니다.
복을 비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꼭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법륜스님-


법에 귀의해서 열반과 해탈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 불자의 길입니다.
복을 비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라는 스님의 말씀처럼
팔정도 수행을 일상화하려 노력하고 생활 속에서 오계를 실천한다면
조금이나마 2600년 전 붓다께서 깨달은 그 중도와 연기의 미묘한 법을 깨닫지는 못하더라도
깨달음을 실천하는 그런 불자의 삶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진정한 걸림 없는 자유, 두려움 없는 행복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몽 하나 올림.

팔정도
정견(正見):올바로 보는 것이다.
정사(正思:正思惟):올바로 생각하는 것이다.
정어(正語):올바로 말하는 것이다.
정업(正業):올바로 행동하는 것이다.
정명(正命):올바로 목숨을 유지하는 것이다.
정근(正勤:正精進):올바로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이다.
정념(正念):올바로 기억하고 생각하는 것이다.
정정(正定):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다.
나무 아미 타불 관세음보살.

부처님의 깨달음의 지혜가 궁금하시다면 아래의 링크를 눌러 잠시 읽고 가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2021.04.07 - [부처님 일생] - 26.아함경의 사성제 팔정도

26.아함경의 사성제 팔정도

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아함경의 사성제 이야기입니다. 지난 시간을 못 보시고 오신 분께서는 잠시 읽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2021.03.31 - [부처님 일생] - 25. 중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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