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일생

31.불의설법

몽하나 2021. 6. 23. 1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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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 부처님 일생 우르 벨라 가섭의 교화 이야기를 아직 듣지 못하신 분께서는 잠시 읽고 오셔도 좋습니다.
2021.05.17 - [부처님 일생] - 30. 우르 벨라 가섭의 교화 법륜스님의 이야기

30.우르벨라가섭의 교화 법륜스님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30. 우르 벨라 가섭의 교화를 법륜스님 이야기로 들어 보겠습니다. 지난 이야기 불교의 전도 선언을 아직 보지 못하신 분은 잠시 읽고 오셔도 좋습니다. 20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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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한 번째 부처님 이야기 시작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야 근교에서 가섭 3형 제등 교화하시고 1000명의 대중을 이끄시고 80KM의 길을 오셨습니다.
왕사성 밖 서문 밖 외진 곳 1252명의 아라한과 부다가다의 영축산의 그리드라쿠타 독수리봉에 이르러 불의 설법을 하셨습니다.
이곳은 반야심경과, 법화경,이 설해진 곳이기도 합니다.
또한 여러가지 불교 역사의 중요한 성지중 한곳 입니다.
지도 첨부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눈(眼)은 불타고 있다.
색채와 형태는 불타고 있다.
눈의 식별 작용은 불타고 있다.
눈의 접촉(색. 형태. 식별 작용)은 불타고 있다.
눈의 접촉에 의해 생기는 감수(感受)는
좋거나 나쁘거나 혹은 그 어느 쪽도 아닐지라도 그것 역시 불타고 있다.
무엇에 의해 불타고 있는가.
욕망의 불로, 혐오의 불로, 미혹의 불로 모든 것은 활활 타오르고 있다.
탄생과 노쇠, 죽음과 근심, 슬픔과 고통, 번뇌와 번민에
의해 불타고 있다.”
설법을 들은 1000여 명 제자들의 모든 번뇌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마하 박가 기록)

나의 괴로운 생존은 끝났다.
청정한 수행은 완성되었다.
실천해야 할 바를 모두 실천했다
다시는 괴로운 생존을 받지 않는다."
이렇게 불의 설법이 베풀어졌을 때, 천 명의 비구들은 집착이 사라져 모든 번뇌에서 해탈했다.
라고 기록에 전해집니다.


부처님은 카샤파 3형제로 대표되는 붓다 가야의 수행자들을 교화하셨습니다.
〈마하 박가〉.〈니다나가타〉 등에 의하면 다섯 비구를 상대로 부처님께서는
녹야원에서 ‘깨달음’을 처음으로 설파하셨습니다.

“비구들아, 두 가지 극단이 있으니 출가자는 결코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 두 가지란 무엇인가.
하나는 여러 가지 애욕에 빠져 그것을 즐기는 것이니 그것은 열등하고 세속적이고 범부의 짓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되는 바가 없다.
다른 하나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것에 빠져 고통스러워하는 것이니
그것도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되는 바가 없다. 비구들아,
여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원만히 잘 깨달았다.
중도는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킨다.
그리고 고요함과 수승(세상에서 희유하리만큼 뛰어난)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된다.”



카필 라바 스투 성을 나와 수행을 시작하고, 고행을 거듭하기 6년. 부다가야 보리수 아래의 금강 보좌에서 정각을 이루고, 가르침 펼 것을 주저하던 부처님께서는 사함 파티의 권청을 받고 어렵게 시작했지만 모든 일들이 자연스레 진행됐다 범천의 권청에 의해 다섯 비구를 찾아가셨고 그들에게 첫 설법을 하셨습니다.

“그러면 비구들아,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눈을 뜨게 하고 앎을 일으키고, 고요함과 수승한 앎과 바른 깨달음과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란 어떤 것인가. 그것은 곧 여덟 가지 성스러운 길(팔정도)을 말하는 것이니, 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이다. 비구들아, 이것이 여래가 원만히 잘 깨달았고 열반에 도움이 되는 중도이다.”


바라나시 장자의 아들 야사의 출가, 야사 부모의 귀의, 야사 친구들의 출가, 승단의 출범과 전도 선언후 부처님께서는
부다가야의 우루벨라로 다시 돌아가셨습니다.
왜 다시 거기로 갔을까요? 라즈기르로 가시지 않고 왜 우루벨라로 가셨을까요?
불에 집착하는 사화 외도(가섭 삼 형제는 불을 신봉하는 자들을 이름)들을 제도하고,
불로 대표되는 욕망을 제거하라고 가르치기 위해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부다가야로 돌아와 마침내 카샤파 3형제를 교화하셨습니다.
3형제와 무리 1000명을 교화시킨 부처님은 영축산 독수리봉에 오르시고
“모든 것은 불타고 있다”는 ‘불의 설법’을 펼치셨습니다.
이 불의 설법을 통해 “욕망을 끄고, 번뇌를 소멸시키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예술조각품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독룡 발우에 담아 카샤파 형제에 보여주는 장면 파키스탄 박물관


불교에서는 욕망을 ‘불’에 비유합니다.
모든 것을 활활 태우듯 욕망이 그렇게 자신과 타인을 괴롭힌다는 뜻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을 불타는 집에 비유하셨습니다.
이를 ‘삼계화택(三界火宅)’이라 합니다.
※삼계화택은 본래 불교의 <법화경>에서 나온 말입니다. <법화경> ‘비유품’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큰 기와집에 불이
나지만 아이들은 놀이에 정신이 팔려 이를 인식하지 못합니다.
불이 났으나 빨리 나오라는 다급한 아버지의 외침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자 아버지는 장난감 수레가 밖에 있다고 말해 아이들을 구하게 됩니다.
여기서 아버지는 부처님이고 아이들은 어리석은 중생을 이르는 말입니다.
집은 삼계(三界)를 의미합니다.
불가에서 인간을 포함한 모든 중생이 살고 있는 세계를 삼계라 하는데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로 구분합니다.
중생은 이 삼계를 윤회하며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이 삼계가 모두 불이 난 집과 같습니다.
그래서 삼계가 편안하지 못함이 마치 불난 집과 같다고 합니다.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상대로 첫 법륜을 굴린 부처님이 다시 부다 가야 근방으로 돌아온 것도,
우루벨라 마을에서 ‘불(=욕망)’을 섬기는 카샤파(가섭) 3형제를 제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3형제를 모두 교화시킨 부처님은 영축산 독수리봉에서 그들을 대상으로 인간의 욕망과 번뇌를 불에 비유해
“모든 것이 불타고 있다”는, 유명한 ‘불의 설법’입니다.


우리도 부처님처럼 욕망의 불을 끄는 그날을 위해
오늘도 참회합니다.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사죄합니다.
제가 부족한 탓입니다.감사합니다.행복하세요.편안하길 바랍니다.행복하길 바랍니다.모든 것이 덕분입니다.몽 하나 올림.




2021.06.20 - [부처님 일생] - 탐진치 삼독의 불을 거라 / 법륜스님 말씀

탐진치 삼독의 불을꺼라 / 법륜스님말씀

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탐진치 삼독의 불을 거라 / 법륜스님 말씀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법륜스님께서 잘 설명해 주셨습니다. 구멍 난 인형을 꿰매며 듣다가 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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