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31. 번뇌를 잠재우는 방법 / 마하시 사야도 스님의 초전법륜경을 올려 드립니다.
아직 지난 시간 경전의 정의에 따라 한 단계에서부터 시작을 읽지 못하신 분들은 잠시 읽고 오시면 오늘의 글을 읽는데 더욱더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2021.06.10 - [마하시 사야도 초전법륜경] - 30. 경전의 정의에 따라 한 단계에서부터 시작
31번째 이야기 '번뇌를 잠재우다.'
중도는 번뇌를 잠재우고 고요하게 합니다.
팔정도를 계발하면 번뇌를 잠재웁니다.
위빠사나 의도는 순간적인 고요함만을 가져오지만 성스러운 도는 번뇌의 완전한 소멸을 가져옵니다.
감각적 쾌락에 빠지면 번뇌는 절대 소멸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번뇌가 더욱더 커집니다. 한번 감각적 쾌락의 유혹에 빠지면 계속해서 더 큰 감각적 쾌락을 요구하는 갈애가 생깁니다. 하나의 감각적 대상을 가지면 더욱더 많이 갖고자 하는 욕망이 생겨 납니다.
하나의 갈애는 더 많은 갈애를 유발합니다. 여기에는 끝이 없습니다.
이 책에서는 부유하지만 행복하지 많은 사람들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그들은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결코 만족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욕망에는 끝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쾌락에 빠지는 행동은 번뇌의 소멸을 가져오는 게
아니라 번뇌를 키워 나갈 뿐입니다.
고행도 번뇌를 제거하지 못합니다.
이 수행법을 닦는 사람들은 극심한 추취와 더위에 몸을 노출시키고 절식하면 번뇌가 제거된다는 마음을 가질 것입니다. 그러나 극단적인 수행의 결과 기운이 없어져서 일시적으로 번뇌가 멈추는 것일 뿐입니다.
심각한 병에 걸리거나, 질병으로 괴로워하거나, 체력이 쇠퇴해지면 번뇌가 숨어 버려집니다. 하지만 병이 나아서 일상의 건강과 체력을 회복하면 감각적 즐거움에 대한 욕망이 다시 태어납니다.
그래서 자기를 학대하는 수련이 끝나거나 중단하고 난 후, 활기를 회복하면 예전처럼 번뇌가 일어납니다.
심지어 거친 번뇌를 억누르는 고행을 하는 둥에도 섬세하고 미세한 번뇌가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편안하게 살고 싶고, 고행의 불편함과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은 욕망이 일어날 것입니다.
'내가 이 수행을 하고 있다"라고 하는 유신견과,
어느 누구도 이러한 수행을 할 수 없다는 자만이 생기고
그리고 이 수행법으로 해탈을 이룰 수 있다고하는 수행법에 대한 잘못된 믿음이 생겨납니다.
주석서
※유신견이란 사까야 띠 즉 오온과 (존재의 무더기)와 (견해)의 합성어이다.
영어로는 personaility belief, wrong view of self 등으로 풀이된다.
이는 불멸하는 영혼이나 인격의 주체와 같은 존재론적 실체가 있다고 믿는 그릇된 견해로
중생들을 윤회에 묶어두고 있는 10가지 족쇄 중 첫 번째이다.
여기엔 네 가지가 있다.
①오온이 바로 자아라는 생각.
②오온 안에 자기가 들어 있다는 생각
③자아 안에 오온이 들어있다는 생각
④ 자아가 오온의 주관자란 생각이다.
빠알리 경전에 나오는 유신견의 정형구에 대해 말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정통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의 법에 정통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알아차린다.
느낌 인식 상카라 들은 아는 마음을 자아라고 알아차린다.
아는 마음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아는 마음이 자아 안에 있다고,
아는 마음 안에 자아가 있다고 알아차린다.
이와 같이 유신견이 있게 된다.
이 유신견은 성자와 범부를 판단하고 걸러내는 금강석이다.
왜냐하면 이 유신견을 타파하지 못하면 성자의 초보단계인 수다원도 될 수 없기 때문이고
유신견으로 대표되는 족쇄들이 풀리지 않으면
아무리 깊고 미묘한 천상에 태어나도 탐, 진, 치의 불길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이다.
몽 하나의 생각
이로서 불교는 샤머니즘도 토테미즘도 애니미즘도 아닌
오로지 바른 법에 의지하는 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아마도 나와 같이 직관력이 많이 뛰어난 사람들은
얼마나 그동안 많은 실수를 했는지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반성해 볼 수 있습니다.
나의 사견으로 얼마나 많은 실수를 했는가....
어떤 오만과 자만에 빠졌었는가 다시금 반성해 봅니다.
가끔 법력이 높으신 스님들을 뵙거나 유튜브에서 보면 어쩜 저리 행복해 보이실까 합니다.
또한 주위에 우리 절 회장님이나 명상 선생님 같은 분을 뵈었을 때는
항상 온화하고 인자한 모습에 '나도 저분들처럼 행복해지고 싶다.'라고 생각할 때도 많았습니다.
행복해지는 길 번뇌를 소멸하는 길 그것은 오로지 중도이고 중도를 이루기 위해서는 팔정도를 계발해야 하며 팔정도를 계발하는데 도움을 주는 명상수행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씀을 깊이 새기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팔정도를 계발하는데 도움이 되는 명상에 관한 이야기는 아래의 링크를 눌러 읽어 보시면 됩니다.
2021.04.21 - [마하시 사야도 초전법륜경] - 28. 마하시 사야도 큰스님 초전법륜경 혜안과 지혜를 얻는 방법
감사합니다.
정말 행복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우리 구독자님들께서도
편안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하시기를 바랍니다.
함께 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평화롭길 바랍니다.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몽 하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