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일생

25. 중도의 실천과 이익. 마사히 사야도 초전법륜경

몽하나 2021. 3. 31.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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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마하시 사야도 스님의 초전법륜 경과 법보신문 전오식과 제6 의식의 내용으로 부처님 말씀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어 마하시 큰스님의 설명과 함께 따라가 보겠습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조금 더 재미있게 부처님 생애 이야기로 돌아가겠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중도를 실천할 때 얻는 이익에 대해 부처님의 말씀을 하려고 합니다.

요 며칠 부처님과 오비 구의 초전법륜 경이 야기여서 다소 지루하다고 느껴질 수 있지만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지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여 미흡하지만 적어두고 가려합니다.

 

오늘 내용이 어려우시면 숫타니 파타를 읽어주셔도 괜찮습니다.

지난 시간 마하시 사야도 여래소설 초전 법륜경 중도의 바른 집중 사선정 위빠사나 수행의 기초를 못 보시고 오신 분은

잠시 보고 오시면 아래의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2021.03.24 - [캄보디아 소소한 일상] - 24. 마하시 사야도 여래 소설 초전법륜 중도의 바른 집중 사선정 그리고 위파사나 수행의 기초 

 

24. 마하시 사야도 여래소설 초전법륜 중도의 바른 집중 사선정 그리고 위빠싸나 수행의 기초

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그동안 제가 에드 신청으로 인해 글을 하루 한 개의 포스팅만 하기로 하여 이렇게 글이 늦어졌습니다. 부처님 말씀을 우선으로 해야 했었는데 이제야 글 올려드립니

gwanseeum99.tistory.com


우리는 앞에서 두 극단(양극단)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양 극단에 대해 글을 못 보신 분들을 위해 아래의 링크를 걸어둡니다.

만약 보셨다면 아래의 글로 넘어좌 주셔요.

만약 보지 못하셨다면 보시고 오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2021.03.16 - [부처님 일생] - 21. 초전 법륜경 (여래 소설)의 설법

2021.03.19 - [부처님 일생] - 23. 여래 소설 초전법륜경 양극단 고행하지 마라

 

 

 

 

스물다섯 번째 이야기 시작합니다.

 

부처님 께서 말씀하셨다.

 

두 극단적인 길은 잘못된 것으로, 피해야 한다.

중도가 바른 길이다.

마하시 사야도 초전법륜경-

 

여래 소설에는 이렇게 전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그 오욕락을 즐기는 것과 고행하기를 즐기는 것, 낮은 법 두 가지를 가까이하지 말고 여래가 4성제(성스러운 진리. 고집멸도)를 바르게 깨달은 지혜의 눈으로 보기를,

오욕락을 즐기다 죽으면 끝난다는 것과, 고통스러운 고행을 즐기는 두 가지 낮은 법,

이 두 가지 가운데인 중도의 실천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며,

번뇌를 소멸하고,

열반을 성취하기 위해서,

성취해야 할 법 즉 그것이 중도의 실천이다. 

 

여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그 중도란 무엇인가?

거룩하게 잘 갖춰진 여덟 가지 길이다.

그 길은 무엇인가?

 

바르게 이해하는 것

바르게 생각하는 것 

바르게 말하는 것 

바르게 행하는 것 

바르게 살아가는 것

바르게 노력하는 것

바르게 마음을 챙기는 것

바르게 마음을 머무는 것이다.

 

이 여덟 가지 길을 중도(팔정도)라 한다.

 

 


 

중도의 실천과 이익

 

그렇다면 양극단이라 불리는 감각적 쾌락의 추구와 자기 학대적 고행을 피하고 어떻게 중도에 이를 것인가.

마하시 큰 스님께서는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형상, 소리, 냄새, 맛, 다섯 가지 감각이 대상일 경우, 계율에 어긋 나지 않고

법을 얻는데 도움이 되는 이런 대상 들은 향유 해도 됩니다. 

먹을 때가 되면 먹고 필요할 때 옷을 입으면 편안하게 법을 닦는데 도움이 됩니다.

극단적인 고행을 금욕을 피하는 것입니다.


음식이나, 옷, 약, 집이나 거처 같은 필요한 것을 사용할 때에는, 사려 깊은 숙고를 하거나 집중 수련 사마타를 수련하거나

통찰의 지혜 수행 위빠사나를 해야 합니다. 다섯 가지 감각 대상에 부딪힐 때(아래의 설명 있습니다.) 마다 통찰의 수행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감각 대상을 통찰의 수행 대상으로 알아차리면, 필수적인 음식과 옷을 사용하는 것이 즐거움이나 쾌락으로 발전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감각적 쾌락이라는 극단을 피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선언하셨습니다.

"이 두 극단적인 수행을 피함으로써 나는 중도를 얻었다."

 


사려 깊은 숙고와 통찰의 지혜 수행은 알아차림과 집중, 지혜를 개발하고 (중도) 팔정도로 들어가게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자기가 사용하는 물품을 숙고하거나 이것이 수행의 대상임을 알아차려 여기에 빠져 감각적인 즐거움으로 발전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수행자가 보고 듣고 감촉하고 인식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현상의 (무상, 고, 무아)를 통찰하면,

보거나 들어서 생긴 탐욕과 성냄이 더 커지지 않습니다.

수행자가 음식, 옷, 약, 거처 등 네 가지 필수품과 같이 할 때마다 그 느낌에 대한 알아차림을 지속할 수 있으면 이에 따른  번뇌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렇게 수행자는 사려 깊은 숙고와 집중 수련, 통찰의 지혜 수행 등을 하면서 편리한 생활필수품을 사용할 수 있고 여기에서 기쁨이나 쾌락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음식을 먹을 때도 이와 같이 중도의 수행을 해야 합니다. 중도 수행을 하면 육문에서 일어나는 모든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을 지속할 수 있고 이로서 진정한 대상의 자연적 성품을 알게 되어 혜안이 생기고 통찰의 지혜가 열려 열반을 성취하게 됩니다.

이러한 모든것을은 중도를 실천함으로써 얻는 이익입니다.


다섯 가지 감각 대상에 부딪힐 때마다 통찰의 수행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라는 의미를 알아보자면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식이 일어날 때 알아차림의 수행을 하여 지혜로서 보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다섯 가지 감각의 대상은 눈 귀 코 혀 몸 (안이 비설 신)이라는 것입니다.

그것들과 만나는 (접촉한다 부딪힌다는) 것은 눈이라는 감각 대상이랑 만나는 형상, 귀라는 감각 대상이랑 만나는 소리,

코라는 감각 대상이랑 만나는 냄새, 혀라는 감각 대상이랑 만나는 맛, 몸이라는 감각 대상이랑 만나는 감촉의 다섯 가지입니다.

 

그리고 '의'를 통해 이러한 다섯 가지 감각 대상을 받아들인 현상 즉 전오식을 판독하고 인식하게 됩니다.

즉 전오식은 마음과 보고 듣고 느끼고 맛보고 냄새 맡은 것의 결과물이라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안식이 일어나는 과정을 보면 눈의 대상인 형상이 눈의 문에 나타나면

(문은 안이 비설 신의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에 대한 상식적인 표현이다.)

 

1. 제일 먼저 오분 전향의 마음 즉 (다섯 감각의 문들 가운데 하나로 향하는 마음)이 일어나서 눈의 문으로 향합니다.

(꽃을 바라본다)

 

2. 그다음에는 눈이 아는 마음이 일어나고

(안식 빛깔과 형색을 판단하고 좋거나 싫음을 분별하는 마음이 생김 안식)

 

3. 그다음에는 받아들이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4. 그다음에는 조사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5. 그다음에는 결정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제6 의식의 작용 시작: 과거 경험, 기억, 비교, 판단, 어느 나라꽃인지 과거 본 적이 있는지 필요한지 어떻게 할 것인지...)

 

6. 그다음에는 그 대상을 경험하는 마음인 7가지 속행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해로운 것인지 나에게 그른지 나에게 나쁜지 그래서 어떻게 할 것인지)

 

7. 그다음에는 등록하는 두 가지 마음이 일어납니다.

(나에게 염오로 남을 것인지 나에게 청정심으로 남을 것인지)

 

※7가지 속행 :이 판단하는 과정에서 중간 상인처럼 개입하는 주체가 있는데, 이것이 아애식(我愛識) 즉 제7 식입니다. 그 7식이 전오식에서 받은 내용물이 나에게 친숙한 지, 낯선지, 이로운지 해로운지, 옳은지 그른지 구별하고 판단(想)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판단한 내용물들을 욕구하거나 싫어하도록 결정(行)을 내리는 것입니다.

 

※등록하는 마음 두 가지 :이 모든 판단 작용의 자료들은 제8식에 기억돼 있고 그 자료들을 바탕으로 제7식이 전오식의 새로운 정보에게 각각 수상행의 고락, 이해, 시비를 분별하고 이어서 탐진치(行)를 일으킨다.

(이러한 과정들이 제6식의 작용이다.) 이때 마음이 대상에 사로잡혀 있으면 염오 심이고, 마음이 대상과 분리되면 청정심이라는 것이 유식의 관점이다.

 

이것이 견분과 상분의 작용이며, 마음이 상분에서 분리되어 견분을 스스로 아는 것을 자증분(svasam.vedana)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유식의 수행은 견분을 상분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이다. 견분을 상분으로부터 분리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것은 알아차림(noting)이다.) 법보신문-

 

하나의 인식 과정 중에 안식은 한 찰나 동안만 일어나지만 마음은 13개의 심찰 라동 안 지속됩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자면 안식, 이식, 비식, 석식, 신식의 전오식의식이 없으면 (받아들이는 마음 조사하는 마음 결정하는 마음이 없으면 ) 판독 불능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식으로 바라본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우리는 이라는 감각기관의으로 사물을 볼 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보지 않고 마음 ()의 영향을 받습니다.

 

식이라 함은 분별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안식의 경우 안은 눈으로 보는 것외에 식 즉 마음의 작용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의 인식이라는 말과 비슷하겠습니다.

하여 우리는 인식하는 대상의 본질을 잃어버리고 항상 선과 악으로 구별합니다.

식은 선과 악 아무것도 아님을 구별하는 기능이 있습니다.

즉 대상을 나쁘게 느끼면 괴롭고 대상을 좋게 느끼면 내가 즐거우며 대상을 나쁘거나 좋게 느끼지 않으면 괴롭거나 즐겁지 않습니다.

위의 과정 1~7까지의 과정에 따라 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범부의 특성입니다.

 

하여 우리는 항상 평가자가 되는 것이고 우리가 바라보는 모든 것은 수동적인 평가 대상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능동자가 되는 것이고 바라보는 모든 대상자는 수동자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범부이니 누가 나를 평하가는 것은 이에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의연해질 수 있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마음은 수행이 부족하여 항상 이러한 식이 작용합니다.

이와 같이 식은 항상 인식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담이지만 그래서 남의 시선에 너무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차피 우리는 평가받게 되어있다는 것입니다.)


식은 번뇌를 갖고 활동하다가 번뇌가 소멸이 되면 식의 본성인 진짜 지혜가 나타납니다.

온갖 사물을 상대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겉모습이 아닌 본모습인 실상과 본성을 한 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을 증득이라 하고 우리는 이때에는 식이라 하지 않고 지혜라 합니다. 

대상의 본성과 실상을 깨닫는 것 그것이 지혜의 증득이라 합니다.


즉 부처님께서는 

우리는 이러한 감각적 대상에 부딪힐 때마다 통찰의 수행 대상임을 알고 알아차림의 수행을 하여 중도를 실천하며 (팔정도 수행) 그 이익으로서 진정한 대상의 자연적 성품을 알게 되어 혜안이 생기고 통찰의 지혜가 열려 열반을 성취하게 될 수 있다는 구체적인 방법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부처님.

오늘도 성불하세요.

당신을 위해 기도합니다.

몽 하나 올림.

 

 

 

 

 

 

 

다음 시간에는 조금씩 하겠습니다.

 

다음 시간 부처는 주석을 따로 하고 부처님 일생 이야기를 조금 빠르게 전개하겠습니다.

오늘까지 알아차려 주시기 바랍니다.

나무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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