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일생

21.초전 법륜경 (여래소설)의 설법

몽하나 2021. 3. 16.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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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지난 이야기 20.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의 교외 이 시 타파에 도착하시다를 못 보신 분 께서는

잠시 읽고 오셔도 괜찮습니다.

 

 

 

2021.03.15 - [부처님 일생] - 20. 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의 교외 이 시 타파에 도착하시다.

 

20.부다가야에서 바라나시의 교외 이시타파에 도착하시다.

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지난 이야기 19. 첫 법문을 위해 길을 떠나다.(나체 수행자 우빠까를 만나다)를 못 보시고 오 시분 께서는 아래의 링크를 누르시고 잠시 읽고 오셔도 괜찮습니

gwanseeum99.tistory.com

스물한 번째 부처님 이야기 초전 법륜경 (여래 소설)의 설법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스물한 번째 이야기에서는

부처님께서 처음 깨달으신 것을 오비 구에게 자진해서 설하신 귀한 법문이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를 여래 소설이라 하고 초전법륜이라 합니다. (아함경에서는 전법륜이라 쓰여있음.)

부처님께서 45년에 걸쳐 행하신 설법 중 오직 단 한번 예외적으로

먼저 설하고자 하시는 가르침의 내용이 마련된 다음에

이것을 빨리 깨닫는 이는 누구냐 해서

설법의 기회가 주어진 적은

단 한 번뿐이었던 점에서 이 설법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또한 가장 부처님의 육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설법이 갖는 의미와 힘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신 모든 분들께서 초전법륜경을 읽으신 공덕으로 모든 소원 성취하시길 발원하며 

잘못된 길 즉 두 극단의 길을 따르지 않고 중도의 길을 닦는 방법인

팔정도를 수행하시고 깨달음을 얻으시길 기원합니다.

 

 

 

해는 아직 붉게 빛나고 달은 노랗게 떠 있었다.

미안 마력 1324년 지금으로부터 2551년 전 우 안거의 보름날 저녁이었다.

이들은 조용히 일어나 이사 타파에서 500M 떨어진 고요한 숲 속으로 자리를 옮겨 이 시 타파의 녹야원으로 갔다.

고요한 숲 속에는 오직 다섯 수 행자와 부처님만이 있었다.

다섯 수행자들은 부처님께서 법문을 펴실 때를 고요히 공경하는 마음으로 준비하며 기다렸다.

부처님께서는 초야에 명상에 들으셨고 중야에는 명상을 풀고 마음을 편안히 하시고 새벽녘에 설법을 시작하셨다.

(미얀마 마하시도 초전법륜에는 저녁에 설하셨다 하셨다.

하지만 필자는 법륜스님의 말씀과 함께 적어 두었다.)

 

 

 

초전법륜경 (여래 소설)

나는 이와 같이 들었다.

한때 부처님께서 바라나시에 있는 이 시 타파의 녹야원에 계셨다.

그때 부처님께서 오비 구라는 다섯 수행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따라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극단(수행)이 있나니

그 둘이란 무엇인가? 

온갖 욕망에 깊이 집착함은 어리석고 추하다.

범부의 소행이어서 성스럽지 못하며 무익하니라.

또 스스로 고행을 일삼음은 오직 괴로울 뿐이며

역시 성스럽지 못하고 무익하니다.

나는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를 깨달았으니,

그것은 눈을 뜨게 하고 지혜를 생기게 하며

이것이 고요함 열반으로 인도하였다.

 

(지혜적정:마음에 번뇌가 끊어져 고요한 모양/등각:붓다의 깨달음은 평등하다. 즉 누구나 붓다가 될 수 있다.

붓다는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열반:번뇌의 소멸)

 

 

 

"비구들이여, 수행자가 따라서는 안 되는 두 가지 극단이 있나니

그 둘이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두 가지 극단(수행)은 무엇이었을까?

첫째 극단(수행)의 그중 하나는 욕망의 대상인 감각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 쾌락을 만들기 위해 애쓰는 것이고

또 이것은 그것을 즐기는 것이다.

이 극단(수행)은 세속 사람들의 습관으로 저급하고 속된 것이며,

범부(일반 사람 세속적인 사람)들이 탐닉하는 통속적이고 세속적인 것들이다.

청정하지 못하고 품위가 없으며 참된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성직자들에게 맞지 않다. 

감각적 쾌락의 추구는 하나의 극단으로 알고 피해야 한다.

즐거운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은 감각적 쾌락의 대상이 된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즐김으로써 감각적 쾌락의 대상을 추구하게 된다.

 

둘째 극단(수행)의 두 번째는

사람이 우리에게 필요한 영양을 공급해야 하는 식사를 하지 않거나

옷을 입지 않는 것은 자기 학대로

무익하다. 청정하지도 못하며 고귀하지도 못하다.

이러한 수행은 성자들이 추구하지 않는다.

이것은 우리가 찾는 참된 이익 (깨달음의 길)과도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래서 또 하나 극단적 고행을 피해야 한다.

-마하시도 초전법륜과 아함경 여래 소설 초전법륜 참고 -

 

 

 

이 두 극단을 피함으로써 중도라고 하는 참된 길에 도달한다.

 

하... 부처님...ㅠ.ㅠ 저 이렇게 감동 주셔도 됩니까?...

눈물이 핑... 돕니다.

지난날 스스로를 괴롭히고 자책하며 힘들게 했던 극단적인 나를 토닥이며

행복의 길로 가라고 이끌어주셨습니다.

그것은 그저 잘못된 길이라고요..
그저 옳지 않은 길이요..
그 길에서 나와야 한다고요..

우리는 때로는 잘못된 길로 들어서

길을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넘어질 때도 있지요.

집착에 빠져 극단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우리가 한 실수 혹은 실패라는 라는 그 자체보다

실수하거나 실패한 스스로를 자책하며(극단)

어쩜 더 많은 중요한 것들을 소비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긴 극단적 수행의 끝에 빛을 찾은 그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 이야기를 절대 잊지 마세요.
그가 들려주는 지혜와 위로, 행복을요.

또한 혹은 세상에 모두가 현자라 일컫는 이도 그런 과정이 있었다는 것을요....

길을 잃으셨다면
그것은 그저 잘못된 길(방법)이었습니다.
잘못된 길이요.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깨닫고 옳은 길로
가면 됩니다.

스스로를 자책하며 슬픔에 빠져있는 이들이 다시 꿋꿋이 일어나서

극단적인 감각적 쾌락도 극단적인 자기학 대도
극단적인 세상 모든 것에 대한 폭력도

멈추고 자신을 사랑하면서 자신만의 길을 다시
묵묵히 걸어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부처님께서도 그렇게 하셨듯 말입니다.

 

 

 

저와 함께 오비 구가 되어 내일 또 뵙겠습니다.

당신의 모든 삶이 밝게 빛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길을 묻는 당신께

몽 하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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