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 일생

29.불교의 전도선언/ 전법선언/ 다메크수투파

몽하나 2021. 5. 3.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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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29. 불교의 전도 선언/ 전법 선언/ 다메크수투파 글을 올리려 드립니다.

지난 시간 이야기 우바새 우바이 불교 최초의 재가 신자 이야기 4부대 중의 탄생 이야기를 아직 보지 못하신 분께서는 잠시 아래를 눌러 읽고 오셔도 좋습니다.

 

 

2021.04.27 - [부처님 일생] - 28. 4부대 중/ 우바새 우바이/ 불교 최초의 재가신자/ 삼귀의 오계의 유래

28. 4부대중/ 우바새 우바이/ 불교 최초의 재가신자/ 삼귀의오계의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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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아홉 번째 이야기 불교의 전도 선언 시작합니다.

 

야사의 출가와 야사 부모님 우바새 우바이의 부처님께 귀의하여 재가 신자가 되었다는 소문은 금세 바라나시의

시내로 퍼지기 시작했다.

 

이때 이 소문을 들은 야사의 친한 벗 네 명은 도저히 이 소문을 믿을 수 없었다.

'야사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됐다는 말은 전혀 믿을 수 없다.'

'그는 내가 아는 벗 쾌락을 즐기는 자 욕망에 빠져있는 자 그는 절대 수행자가 될 리가 없다.'

'이는 필시 다른 이유가 있을 것이다.'

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여 우리가 친구 된 자라면 그를 잘못된 길에서 구하러 가야 한다고 까지 생각했다.

이는 필시 도술을 쓰는 자에게 꾐을 당하였거나 속임을 당했을 것이다.

그는 바라나시 최고 부자의 아들이며 절대 수행할 만한 사람이 아니다. 

그리하여 네 명의 친구들은 야사를 구한다는 명분으로 야사를 찾아갔다.

야사는 친구들을 맞이하였고 야사의 권유로 부처님의 법을 듣고 깨닫고

그 자리에서 4명도 출가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소문은 점점 더 퍼져나갔다.

 

각지에 사는 야사를 아는 젊은이들 혹은 이를 궁금해하는 젊은이들 50명이 찾아왔다.

하지만 이들 역시 야사의 권유로 부처님의 법을 듣고 모두 수다원과를 증득하여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이렇게 하여 야사 등 55인의 출가 대 사건이 벌어지게 된 것이다.

이것은 대 사건이었다.

쉽게 말하자면 그때 당시에 최고의 상류층 자제들과 과 엘리트층의 젊은이들 55인이 출가를 한 사건이다.

이들은 부처님과 함께 정진하여 모두 아라한 과를 증득하였다고 전해진다.

이렇게 하여 60명의 아라한 즉 최초의 오비구와 야사 등 55인의 아라한 제자들을 두고 부처님께서 전도 선언을 하십니다.

-법륜스님-

 

이부분을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졌던 것이 생각이 났다.

이른바 서울대생 집단 출가 사건이라 불리는 이 사건은 다큐멘터리로도 제작되어 세간의 큰 이목을 집중시켰었다.

그때 출가하셨던 스님들 중에 나는 개인적으로 제따나와 선원의 일묵 스님을 너무나 좋아한다. 

스님 건강하세요.

-몽 하나 올림-

 

영상 첨부합니다. 시간이 되시는 분께서는 한번쯤 꼭 보시기 바랍니다.

www.youtube.com/watch?v=6-hfPjXDedw

 

 

 


전도 선언

 

"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한 사람씩 홀로 길을 가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 (진리, 가르침)을 설하라.

또 원만하고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다.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세나니가마로 가리라."

-{상응부경전 계제 한역동본 잠 아함경 승삭}-

 

 

 

 


불교의 전도 선언은 2500년 전입니다.

이 부분은 3 부분으로 되어있습니다.

첫 번째 부분은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라는 부분입니다.

인천이란 인간계와 천상계의 사람들이라는 정도의 뜻이니 많은 사람들 즉 중생 모든 살아있는 생물을 가리킵니다.

또한 모든 사람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의 이익과 안락을 위하여 라고 타이르고 계십니다.

그것은 아함경에서는 참으로 붓다다운 전도 선언이었다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런 정신을 가장 구체적으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 이 대목이 마지막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한 사람씩 홀로 길을 가라."입니다. 이는 부처님께서 박해의 예상은 조금도 없었음이 확실하다는 표현이십니다. 오직 많은 사람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가는 것이니까. 또 사람들이 그들의 공회에 넘기고 회당에서 채찍질할 것도 조금도 생각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해가 되시는지요?

부처님 법은 즉 인간을 위해 오직 세상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까닭에 이 법은 설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전도 정신은 부처님의 전 생애를 일관하여 실현되어 왔을 뿐 아니라, 또 수천 년에 걸친 불교 역사를 통해

지속되어 왔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주 잘 알려진 봐와 같이 불교는 오랜 세월에 걸쳐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 전파되어 왔지만 언제나 그 전도는 평화와 환영 속에 수행되었고, 불교의 이름 밑에 피 흘린 역사는 거의 없다고 과언이 아닙니다.

이는 불교의 전도 선언에 바탕이 된 기본 정신을 이어받은 것으로 여겨집니다.

 

 

 


둘째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 (진리, 가르침)을 설하라.

또 원만하고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이도 있거니와, 법을 듣지 못한다면 그들도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부처님께서는 조리가 정연하고 아리따운 설법을 요구하셨습니다.

즉 불교는 신령에 충만하여 권위 있는 듯 말하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그리고 격한 말을 내뱉어 청중의 감정을 뒤 흔들어 놓는 연설 태도와는 전혀 궤를 달리 하고 있습니다.

처음과, 중간, 끝을 잘 일관하여 설해질 것이 요청되었고, 또 이론과 내용의 구비와 이성을 가지고 고요히

이성을 향해 호소할 것이 요청되었습니다.

거기에는 붓다의 사람됨 그 사람의 성격이 단적으로 나타나 있는 듯합니다.

 

 


 

셋째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세나니가마로 가리라."

그곳은 부처님께서 진리를 깨달은 보리수 근처의 마을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로부터 이곳 바라나시까지 오신 것을 다시 우루벨라로 돌아가려고 하셨습니다.

그곳에는 부처님의 자취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새로운 가르침의 씨앗이 뿌려지지 않았습니다.

 

부처님 한분으로 시작된 이 법이 61명에 이르게 되고 각 각 한 명씩 흩어져 전법의 길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시 우루벨레촌으로 돌아가셔서 우르벨라 가섭 등 1000명의 제자를 교화하시고

왕사성을 가시어 빔비사라 왕을 교화하시고 죽림정사를 창건하셨습니다.

오늘의 이야기는 아함경과 법륜스님의 말씀으로 올려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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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길을 묻는 당신께 

몽 하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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