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몽 하나입니다.
오늘은 3.1절을 맞이하여
3.1에 대한 포스팅을 하려고 합니다.
오늘은 1919년(기미년) 3월 1일
일제 식민통치에 항거하여
거족적 민족운동인 3.1 운동이 일어난다.
3.1 운동이 일어난 배경에는
외부적 영향으로는 세계제 1차 대전의 종전으로
전쟁의 폐전 국가들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주의가 천명된다.
이가 바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이다.
이 영향으로 일본 동경에 있던
우리 유학생들을 중심으로 2.8 독립선언이
발표가 된다.
그리고 이 운동에 감명을 받아
국내에서는 1919년 3.1일
3.1 운동이 일어난다.
고종의 인산일을 배경으로
거족적 민족운동인 3.1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독립운동가들은 종교계 지도자들을 중심으로
민족대표 33인을 뽑는다.
그리고 독립선언서를 작성하였다.
고종의 의혹적인 죽음과 사람들의 술렁임에
더 큰 희생이 발생할까 걱정스러웠던 33인은
독립 선언서 낭독을 하고
경찰서에 스스로 자수를 하게 된다.
하지만 33인의 독립 선언서는 3.1운동의 준비를 위해
28일부터 전국 각지로
독립선언서가 전달 배포되었는데
이것이 거족적 3.1운동의 결정적 구실을 하게된다.
3.1 운동의 점화는 이 낭독문을 얻게 된 한 학생이
독립선언문을 가지고 탑골 공원에서
낭독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3.1 운동이 전국적으로 점화가 된 계기이다.
(최태성 별별한국사)
비폭력 저항운동으로 시작한 3.1 운동은
일제의 총 칼 앞에 우리 민족을 지키려는 저항으로
폭력적 저항운동으로 바뀌게 된다.
일제가 가장 악랄하게 3.1 운동을 제지했던 사건이
바로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이다.
당시 제암리교회에 마을 사람들을 모아놓고
문을 잠그고 교회에 불을 지른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총으로 쏴 죽였던 사건이 바로 제암리 학살 사건이다.
그중에는 아기와 어머니도 있었다고 한다.
이러한 3.1 운동은 국. 내외적으로 많은
영향을 준다.
국외로는 중국의 5.4 운동과
국내에 미친 영향으로는 일제 식민지
통치 정책을 바꾸는 계기로 작용한다.
무단통치에서 소위 문화통치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 영향 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출발하는 계기가 된다.
연해주의 대한 국민의회+한성정부+상하이의 신한청년단의
결과인 한성정부의 정통을 잊고 지역은 상하이에 위치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탄생 가게 된다.
결국 3.1 운동은
지금의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출발을 만들어준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며
우리 선현들의 고귀한 희생이었다.
우리 헌법에도 3.1 운동을 계승한
대한민국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제에 맞서 싸우면서 3.1 운동을 펼치고
이로 인해 대한민국이 탄생하고
끝까지 우리 민족의 저항의 역사와 함께
강한 생명력으로
성장해온 우리 대한민국
정말 자랑스러운 나라가
바로 대한민국 우리나라인 것이다.
외국에 살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이
외국에 나오기 전에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무궁화만 봐도 애국가만 들어도 가슴 뭉클한
순간이 있다.
저마다 사정이 있어 외국에 살지만
한국인이라면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3.1 운동의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이야기이다.
102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이렇게라도 3월 1일 이 날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를 있게 해 주신 선현들께
가슴 깊이 뜨거운 감사를 드립니다.
긴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몽 하나 올림.